“끝이 없어요” 산길에 30명씩 뛰어오니 등산객이 등 돌리고 섰습니다

“끝이 없어요” 산길에 30명씩 뛰어오니 등산객이 등 돌리고 섰습니다

어제 저녁 디시 실시간베스트에 방송 캡처가 서른 장쯤 올라왔어요. 산길인데 사람이 줄지어 뛰고 있고, 옆에 선 등산객은 등을 돌린 채 멈춰 서 있습니다. 제목은 「산길 러닝족에 등산객 부글부글」. 저는 처음에 또 흔한 온라인 싸움인가 했거든요.

근데 눌러 보니 커뮤니티 글이 아니었어요. 채널A 「현장카메라」가 따라다니며 찍은 화면이더라고요. 장소도 분명합니다. 서울 남산, 그리고 경기 남한산성. 그래서 방송 원문이랑 최근 기사들을 같이 놓고 다시 봤습니다.

해가 지자 모여든 사람들.
해가 지자 모여든 사람들. “거기서 팔각정 찍고 내려올 거예요”라는 말이 들려요. (채널A 방송 캡처)

사실 확인

보도는 9월 15일 저녁 「뉴스A 라이브」 현장카메라 코너로 나갔어요. 취재는 권경문 기자가 했고요.

첫 장면이 남산입니다. 공원 안내방송이 이렇게 나와요. “러너 분들에게 공원 이용에 대하여 알려 드립니다. 보행에 지장을 주는 5인 이상 무리지어 달리기를 하지 않습니다.” 벽에도 같은 내용이 붙어 있습니다.

남산 산책로에 붙은 안내판.
남산 산책로에 붙은 안내판. “5인 1열, 무리한 추월은 자제”라고 적혀 있습니다. (채널A 방송 캡처)

근데 그 방송이 나오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옵니다. 기자는 “딱 봐도 30명은 넘습니다”라고 했어요. 산길 절반을 차지한 채로요. 현장음도 잡혔습니다. “거기서 팔각정 찍고 내려올 거예요.”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그냥 뛰러 나온 게 아니었어요. 대회 참가자들이었습니다.

남한산성 쪽이 더 좁습니다. 등산객이 아예 몸을 돌려 멈춰 서요.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기자가 계속 이랬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 이거였어요. “끝이 없어요.” “우리가 피해서 계속 이러고 있었어요.”

계속 이랬냐는 질문에 등산객이
계속 이랬냐는 질문에 등산객이 “끝이 없어요”라고 답합니다. (채널A 방송 캡처)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피해 달라고… 근데 그게 계속되니까 인사도 안 반가웠죠.” 이 말이 저는 제일 남더라고요. 조용히 쉬러 왔는데 하루 종일 비켜주는 사람이 된 거잖아요.

입구에서 아예 돌아선 사람도 있었어요. “포기했어.” 기다릴 거냐고 묻자 “여기 아직 멀었다고”라고 답합니다. 좁은 길에서 뛰다 넘어지는 장면도 그대로 나갔고요. 바로 옆이 낭떠러지였습니다.

폭이 한 사람 반쯤 되는 흙길을 달려 내려오는 참가자. (채널A 방송 캡처)
폭이 한 사람 반쯤 되는 흙길을 달려 내려오는 참가자. (채널A 방송 캡처)

지나가던 등산객은 “너무 위험하다, 돌부리가 많아서, 나무 뿌리하고”라고 말해요. 취재 기자 본인도 참가자와 부딪혔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 와중에 “화이팅 화이팅!” 하는 응원 소리가 들리고, 등산객 입에서는 “우리가 민원 넣을 판이야 지금”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너무 위험하다. 돌부리가 많아서, 나무 뿌리하고.” 등산객 인터뷰. (채널A 방송 캡처)

배경·맥락

이게 몇 사람 성격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숫자가 꽤 가파르게 움직였거든요.

문화체육관광부 「2025년 국민생활체육조사」가 있어요.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한테 주로 하는 종목을 1~3순위로 물었습니다. ‘달리기·조깅·마라톤’을 꼽은 비율이 2024년 4.8%였어요. 2025년엔 7.7%입니다. 1년 새 약 1.6배죠. 전체 종목 중 6위고요.

혼자 뛰는 것보다 모여서 뛰는 쪽이 특히 늘었어요. 지역생활 커뮤니티 당근을 보면 더 뚜렷합니다. ‘산책·달리기’ 같은 말이 들어간 모임이 2024년 말 기준 1년 전의 2.2배가 됐어요.

달리기 인구는 실제로 늘고 있어요.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는 자료사진. (이데일리 보도 갈무리)
달리기 인구는 실제로 늘고 있어요.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는 자료사진. (이데일리 보도 갈무리)

보행로에서는 이미 한 번 크게 붙었던 얘기예요. 서울 서초구가 먼저 손을 댔습니다. 2024년 10월부터 반포종합운동장에서 5명 이상 같이 달리면 사이를 2m 이상 띄우게 했어요. 크루가 트랙을 통째로 쓰고 소리를 지른다는 민원이 쌓였거든요.

2025년 9월엔 여의도공원에도 안내문이 붙었어요. ‘무리 지어 달리기’·’박수와 함성’·’비켜요 외치기’·’웃옷 벗기’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달 31일에는 엑스(X)에 ‘슬로우러닝’ 모임 영상이 올라와 또 시끄러웠고요. 그때 달린 말이 이런 거였어요. “어떻게 뛰든 상관없는데 제발 길만 막지 마라.” “천천히 여러 명이 나란히 뛰면 뒤에서 추월도 못 한다.” 논점은 달리기가 아니었어요. 폭을 얼마나 차지하느냐였죠.

지난달 엑스(X)에서 번진 단체 달리기 영상 캡처. 산이 아니라 보행로 얘기였어요. (머니투데이 보도 갈무리)
지난달 엑스(X)에서 번진 단체 달리기 영상 캡처. 산이 아니라 보행로 얘기였어요. (머니투데이 보도 갈무리)

그래서 법으로는 뭐가 되나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여럿이 같이 달리는 것 자체를 막는 상위법은 없더라고요. ‘5명 이상 금지’ 같은 문구도 전국 공통 기준이 아닙니다. 그 공원이나 운동장이 정한 이용 규칙이에요. 남산 안내방송이 “하지 않습니다”라는 권고 문장인 것도 그래서고요.

그래도 선은 있어요. 이데일리가 정리한 걸 옮기면 이렇습니다. 일부러 길을 막아 불안감이나 불쾌감을 주면 경범죄처벌법이 걸려요. 10만 원 이하 벌금·구류·과료입니다. 통행로를 오래 가로막으면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도 검토될 수 있어요. 다만 법원은 단순한 불편만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달리다 부딪혀 다치게 하면 과실치상죄(500만 원 이하 벌금 등)나 민사 손해배상이 따라붙고요.

달리는 쪽 얘기도 방송에 같이 나왔어요. 한 참가자는 “등산객이 불편할 수도 있죠, 근데 저희도 대회에 10만 원 이상 지불하고 하는 건데 서로서로 조금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다른 참가자는 “대회만의 질서가 있는데 너무 자제를 시키니까 사람들이 불만이 많긴 하죠”라고 했고요.

달리는 쪽 얘기도 실렸어요.
달리는 쪽 얘기도 실렸어요. “저희도 10만 원 이상 지불하고 하는 건데.” (채널A 방송 캡처)

돈을 냈으니 권리가 생긴다는 말로 읽히기도 해요. 근데 주최 쪽이 등산로 이용을 어떻게 협의했는지는 방송에 안 나옵니다. 지자체 입장도 없었어요. 등산객 중엔 “성남시청 짜증나네”라고 말한 분도 있었고요. 허가 문제로 번질 소지는 있어 보입니다. 이 부분은 아직 확인된 게 없어요.

보도 마지막 인터뷰가 아이를 데려온 등산객이었습니다. “바로 옆에가 낭떠러지고 우리는 끝으로 모퉁이로 해야 하니까, 혹시나 부딪혀서 떨어지면 큰일 나잖아요. 계속 애들 신경 쓰느라 주변 둘러볼 틈도 없고….”

아이를 데리고 온 등산객은 낭떠러지 쪽을 걱정하더라고요. (채널A 방송 캡처)
아이를 데리고 온 등산객은 낭떠러지 쪽을 걱정하더라고요. (채널A 방송 캡처)

저는 달리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산을 즐기는 방식은 여러 가지니까요. 다만 좁은 흙길에서 30명이 한 방향으로 내려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남은 사람한테는 선택지가 없어져요. 비켜주거나, 돌아가거나, 접거나.

여러분은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가세요? 좁은 산길에서 마주쳤을 때 누가 먼저 양보하는 게 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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