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단 한 명도 안 나오는 드라마가 중국 황금시간대를 뚫었다

배우가 단 한 명도 안 나오는 드라마가 중국 황금시간대를 뚫었다

지난달 31일 밤, 중국 후난위성TV 화면에 드라마 한 편이 올라왔다. 제목은 ‘후서유기(后西游記)’. 서유기 뒷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여기까지는 그냥 흔한 사극인데, 이 드라마에는 배우가 단 한 명도 안 나온다.

연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니라, 화면에 보이는 인물이 전부 AI가 만들어낸 이미지라는 뜻이다. 촬영장도 없었고, 세트도 안 지었다.

AI로 제작된 중국 드라마의 한 장면
AI로 제작된 중국 드라마의 한 장면

캐릭터 118명, 배경 143개를 다 만들었다

보도된 숫자를 보면 규모가 좀 그렇다. 등장 캐릭터가 118개, 배경 장면이 143개. 그걸 전부 AI로 만들어냈다.

기획부터 캐릭터 디자인, 배경, 영상 생성, 목소리 녹음, 편집까지 AI가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사람은 그걸 지시하고 골라내는 쪽에 붙었다고 보면 된다.

후난위성TV는 중국에서 손꼽히는 위성채널이다. 유튜브나 앱에 올라오는 숏드라마가 아니라, 진짜 TV 편성표 안에 들어갔다는 게 이번 건의 핵심이다. 방송사 쪽 집계로는 첫 방송 때 같은 시간대 위성채널 중 실시간 시청률 1위를 찍었다고 한다.

드라마를 방영한 후난 방송사 사옥
드라마를 방영한 후난 방송사 사옥

사람 2000명 쓰던 걸 100명이 만들었다

돈 얘기가 더 무섭다.

회당 제작비가 90만 위안, 우리 돈으로 약 1억 8000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분 단위로 따지면 2만~3만 위안, 약 405만~607만 원.

제작 기간은 4~5개월. 투입된 인력은 100명이다. 비슷한 규모를 사람이 만들면 2000명이 붙는다고 한다.

2000명이 하던 일을 100명이 했다. 나머지 1900명 자리는 어디로 갔을까.

이게 그냥 신기한 기술 얘기로 안 끝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배우, 촬영감독, 조명, 미술, 분장, 보조출연자… 저 2000명 안에 다 들어 있던 사람들이다.

방송 현장에 설치된 텔레비전 카메라
방송 현장에 설치된 텔레비전 카메라

근데 보고 나온 반응은 갈렸다

칭찬하는 쪽은 이렇게 말한다.

“정교한 영상미와 압도적인 스케일은 AI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반대쪽 반응이 더 구체적이다.

“등장인물의 표정이 경직돼 사람 특유의 미묘한 감정을 담아내지 못한다”
“인물들의 눈동자 움직임이 인위적이고 어색하다”
“AI는 절대 실제 배우를 뛰어넘을 수 없다”

눈동자 얘기가 계속 나오는 게 재밌다. 사람이 사람을 볼 때 제일 먼저 보는 데가 눈이라서, 거기가 조금만 어긋나도 바로 “뭔가 이상한데” 소리가 나오는 거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이미지 예시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이미지 예시

중국 숏드라마 시장은 이미 AI 쪽으로 확 기울었다는 보도도 나온다. 올해 만들어진 숏드라마 상당수가 AI 제작이라는 집계가 있을 정도다.

다만 편수가 많다고 사람들이 그만큼 보는 건 아니라는 지적도 같이 나온다. 쏟아지는 양에 비해 실제로 끝까지 보는 작품은 훨씬 적다는 것.

영상 편집 장비가 놓인 방송 제작 공간
영상 편집 장비가 놓인 방송 제작 공간

하필 서유기였던 이유

소재가 서유기라는 것도 그냥 나온 선택은 아닌 것 같다.

AI가 만든 영상이 제일 티가 안 나는 장르가 판타지랑 사극이다. 요괴가 나오고, 구름 위를 날아다니고, 산이 통째로 흔들리는 장면은 애초에 사람이 “실제로는 저렇게 생겼는데” 하고 비교할 원본이 없다.

반대로 현대 배경의 사무실 드라마를 AI로 만들었다고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매일 보는 얼굴, 매일 하는 표정이라서 조금만 어긋나도 바로 걸린다.

그러니까 이번 건은 “AI가 드라마를 정복했다”기보다는, AI가 제일 잘하는 지점을 정확히 골라서 붙였다고 보는 쪽이 맞을 것 같다. 실제로 어색하다는 지적이 몰린 곳도 배경이 아니라 인물 얼굴이었으니까.

정리하면 이렇다. 만드는 속도랑 비용은 이미 사람이 못 따라간다. 근데 보는 사람 눈은 아직 안 속는다.

문제는 저 어색함이 기술 문제라는 거다. 기술 문제는 보통 시간이 해결한다. 지금 “눈동자가 어색하다”고 하는 게 2~3년 뒤에도 유효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한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배우 없이 만든 드라마, 내용만 재밌으면 볼 수 있을 것 같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