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두 집 중 한 집은 스프링클러가 없습니다. 오늘 정부가 내놓은 건 2만 5천 원짜리였어요

아파트 두 집 중 한 집은 스프링클러가 없습니다. 오늘 정부가 내놓은 건 2만 5천 원짜리였어요

오늘 뉴스에 668만이라는 숫자가 떴습니다. 무슨 숫자냐면, 스프링클러가 없는 아파트 세대 수예요. 우리나라 아파트가 대략 1,200만 가구입니다. 두 집 중 한 집이라는 뜻이죠. 저도 이 기사 보고 천장부터 올려다봤습니다.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근데 확인해 보니 오늘 대책의 알맹이는 스프링클러가 아니었어요. 한 대에 2만 5천 원짜리 자동확산소화기입니다. 왜 스프링클러가 아니냐. 거기에 57조라는 숫자가 걸려 있더라고요.

준공 30년이 넘은 노후 아파트 단지. 자료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준공 30년이 넘은 노후 아파트 단지. 자료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사실 확인

행정안전부가 9월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노후주택 화재안전 관리 강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9월 부산 아파트 화재 뒤에 만든 대책을 보완한 겁니다. 그 뒤로도 사람이 계속 죽었거든요. 그래서 다시 손본 겁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스프링클러가 없는 노후 아파트 668만 세대에 자동확산소화기를 단계적으로 보급한다. 자동확산소화기는 사람이 없어도 불을 감지해서 소화약제를 알아서 뿌리는 장치예요. 뉴시스가 9월 13일에 정리한 걸 보면 대략 72도에서 터집니다. 값은 대당 2만 5천~3만 원입니다. 쌉니다. 설치도 간단해요.

일정은 이렇게 잡혔습니다. 올해는 서울 3만 9천 세대 시범사업. 내년에는 시·도 지방비를 써서 넓히고, 2028년부터 국비를 넣어 전국으로 갑니다. 아파트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이걸 달 수 있게 근거도 만든다고 해요.

소화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전기도 봅니다. 2027년부터는 스프링클러가 없는 노후 아파트의 전기안전점검이 의무가 됩니다. 점검 항목에 콘센트와 멀티탭이 들어갑니다. 전기화재가 거기서 많이 시작되니까요. 추가 비용은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댄다고 합니다. 아크 화재를 막는 아크차단기는 2029년 하반기부터 주택으로 넓힙니다.

연기감지기 얘기도 같이 나왔습니다. 전체 주택이 2,172만 세대인데, 감지기가 필요한 곳이 897만 세대예요. 이 중 453만 세대는 지금도 소방청 지원 대상입니다. 나머지 444만 세대는 빠져 있었어요. 머니투데이 보도를 보면 황순조 사회재난대응국장이 “연기감지기 보급에 필요한 예산은 약 2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했습니다.

왜 스프링클러를 못 다나

이게 제일 궁금했습니다. 답은 기준 연도에 있어요.

스프링클러 의무 기준은 계속 바뀌었습니다. 1990년에는 16층 이상 공동주택의 16층 위쪽 층만이었어요. 2005년에 11층 이상 건물의 모든 층으로 넓어졌고, 2018년에 6층 이상으로 또 내려왔습니다. 규정은 앞으로만 적용됩니다. 소급이 안 돼요. 그전에 지은 아파트는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그 결과가 668만 세대입니다. 그리고 이게 숫자로만 끝나지 않아요. 뉴시스가 정리한 바로는 공동주택 화재 사망자의 약 90%가 스프링클러 없는 건물에서 나왔습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달면 되지 않느냐. 이 질문이 설명회에서도 나왔습니다. 행안부 관계자는 소급 설치에 약 57조 8천억 원이 든다고 답했어요. 돈만 문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리가 없대요. “수조·펌프·배관 설치 공간이 부족한 데다 세대 내부 공사에 따른 주민 불편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겁니다.

1990년대 이전에 지은 서울의 아파트. 자료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1990년대 이전에 지은 서울의 아파트. 자료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올해만 봐도 사고가 줄줄이 있었습니다. 2월에 은마아파트에서 여고생 한 명이 숨졌어요. 7월에는 서울 은평구 연립주택에서 보호자가 나간 사이에 초등학생 두 명이 숨졌습니다. 8월에는 가양동 아파트에서 뇌병변 장애인 어머니와 아들이 숨졌고요. 세 곳 다 준공 30년이 넘었습니다. 스프링클러도, 연기감지기도 없었습니다.

근데 가양동엔 소화기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 번 멈췄습니다. 8월 11일 가양동 화재요. 15층 영구임대아파트였습니다. 8월 14일 합동감식 결과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스프링클러는 없었고, 자동확산소화기는 작동했다. 근데도 두 사람은 돌아가셨어요.

스프링클러 배관과 유수감지장치. 소급 설치가 어려운 이유가 이 배관이다. 자료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스프링클러 배관과 유수감지장치. 소급 설치가 어려운 이유가 이 배관이다. 자료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그래서 이 장치의 한계를 봐야 합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효과가 확인된 방 크기는 약 10㎡, 세 평 남짓입니다. 주방 후드 아래처럼 불이 날 만한 자리에 붙이는 물건이에요. 집 전체에 번진 불을 잡는 물건은 아닙니다. 초기용이에요.

소방청 관계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비용뿐 아니라 수조와 배관 설치 등 구조적인 문제로 쉽지 않다.” 그러면서 자동확산소화기는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거나 확산 속도를 늦추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어요.

단독경보형 연기감지기. 자료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단독경보형 연기감지기. 자료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행안부도 선을 그었습니다. “스프링클러를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 노후주택의 화재안전 공백을 현실적으로 보완하기 위한 초기 소화 수단”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연기감지기와 전기점검이 한 묶음으로 붙은 거예요. 불을 끄는 장치 하나로는 안 되니까, 빨리 알아채고 아예 안 나게 하는 쪽을 같이 얹은 셈입니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집은 국민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생활공간인 만큼 무엇보다 안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다만 저는 좀 무서웠어요.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2만 5천 원짜리로 57조 원의 구멍을 다 메울 수는 없잖아요.

천장에 붙은 연기감지기. 자료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천장에 붙은 연기감지기. 자료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당장 오늘 할 수 있는 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집 천장을 한번 보는 거예요. 주방 후드 위에 동그란 게 붙어 있나요. 방 천장에 감지기는 있나요. 우리 아파트가 몇 년에 준공됐는지도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면 알려줍니다. 여러분 집 천장에는 뭐가 달려 있나요?

참고한 곳

사진 출처

  • Sprinkler head NH.agr.jpg — ArnoldReinhold / CC BY-SA 4.0
  • The sprinkler head in Osaka Business Park Station.jpg — Tokumeigakarinoaoshima / CC BY-SA 4.0
  • Flow sensor for wet pipe of fire sprinkler system.jpg — Darklanlan / CC BY 4.0

대표 사진: 스프링클러 헤드 — 자료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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