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계약 0건이던 아파트에 텐트가 쳐졌다… 전세로 돌리니 벌어진 일

2년간 계약 0건이던 아파트에 텐트가 쳐졌다… 전세로 돌리니 벌어진 일

아파트 앞에 텐트가 쳐졌다. 캠핑하러 온 게 아니라, 전세 계약하려고 밤을 새운 거다.

9월 8일 대구 상인동. 상인푸르지오센터파크 2차 전세 접수 현장 얘기다. 이틀 밤을 기다린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산을 배경으로 늘어선 아파트 단지 (자료사진)
산을 배경으로 늘어선 아파트 단지 (자료사진)

2년 동안 아무도 안 샀던 아파트다

웃긴 건 이 단지, 원래 완전히 파리 날리던 곳이었다는 거다.

다 지어놓고 2년을 비워뒀다. 분양할 때 특별공급이랑 1·2순위 신청을 다 합쳐서 58건 들어왔는데, 실제 계약은?

0건. 한 건도 없었다.

대구가 미분양 전국 최다인 동네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신청 58건에 계약 0건은 좀 세다. 결국 이 단지는 통째로 CR리츠라는 데 팔렸다.

비어 있는 아파트 실내 ※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비어 있는 아파트 실내 ※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그런데 전세로 돌리니까 줄을 섰다

단지를 통으로 사간 CR리츠가 이걸 전세로 내놨다. 조건이 이렇다.

전용 84㎡가 2억2200만~2억3850만원. 전용 113㎡랑 117㎡는 3억1700만~3억2700만원.

인근 시세랑 비교하면 최대 1억 원가량 싸다. 신축인데.

아파트 단지 전경 (자료사진)
아파트 단지 전경 (자료사진)

1억이 싸다는 게 어떤 의미냐면, 같은 동네에서 비슷한 평수 전세 구하려면 1억을 더 얹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텐트를 치지.

왜 안 사던 걸 빌리러는 오나

여기서 좀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있다. 똑같은 아파트인데, 사라고 할 땐 아무도 안 오고 빌리라고 하니까 줄을 섰다.

이유는 단순하다고 본다. 사는 건 집값이 떨어지면 내 손해지만, 빌리는 건 아니니까.

대구 시내 전경 (자료사진)
대구 시내 전경 (자료사진)

대구는 몇 년째 집값이 빠지고 있는 지역이다. 이 상황에서 신축을 분양받는다는 건, 떨어지는 칼날을 잡는 느낌이었을 거다.

근데 전세는 다르다. 시세보다 1억 싸게 신축에 살 수 있고, 집값이 더 빠져도 내 보증금은 그대로다. 게다가 임대인이 개인이 아니라 리츠라서 전세사기 걱정도 덜하다.

기사에서도 몰린 이유를 “가격과 안전성”이라고 짚었는데, 딱 맞는 정리인 것 같다.

저녁 무렵 도시의 아파트 불빛 ※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저녁 무렵 도시의 아파트 불빛 ※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리츠가 집주인이라는 것

이번 건에서 은근히 중요한 게 임대인이 개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CR리츠는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여서 임대로 돌리려고 만든 부동산투자회사다. 여러 투자자 돈을 모아서 건물을 통으로 사고, 임대료로 수익을 낸 다음 나중에 파는 구조다.

세입자 입장에서 이게 왜 나은가 하면, 보증금 떼일 걱정이 개인 임대인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뉴스를 몇 년째 보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이게 가격만큼 큰 조건이다.

집주인이 갭투자로 무리하게 산 사람인지, 다른 데서 대출을 얼마나 끼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등기부등본을 몇 번씩 떼보는 게 요즘 전세 구하기다. 그 과정 자체가 없어지는 셈이다.

싼 데는 이유가 있긴 하다

다만 마냥 좋은 조건만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임대는 보통 거주 기간이 정해져 있다. 리츠가 나중에 팔아서 수익을 내는 구조라, 몇 년 뒤에는 매각 절차가 시작된다. 계속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애초에 이 단지가 2년간 안 팔린 이유도 남아 있다. 위치든, 분양가든, 뭔가 시장이 안 받아준 지점이 있었다는 뜻이니까.

그래도 1억 싸게 신축에 산다는 조건 앞에서 그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사람이, 텐트를 치고 이틀 밤을 기다린 거다.

미분양이 이렇게 소화되기도 한다

사실 이건 미분양 물량이 시장에서 빠지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안 팔리는 아파트를 리츠가 통으로 받아서 임대로 돌린다. 건설사는 자금을 회수하고, 세입자는 싸게 신축에 산다. 겉으로만 보면 나쁠 게 없어 보인다.

대구 시티투어 버스
대구 시티투어 버스

다만 이 구조가 계속 늘어나면 결국 동네 전세 시세 자체가 내려앉는다. 주변에서 같은 평수를 3억대에 놓고 있었는데 신축이 2억대에 나와버리면, 그 집들도 값을 내릴 수밖에 없다.

세입자 입장에선 좋고, 집 가진 사람 입장에선 속이 쓰릴 얘기다.

고층 아파트 (자료사진)
고층 아파트 (자료사진)

어쨌든 확실한 건 하나다. 2년 동안 계약 0건이던 아파트가, 값만 맞으면 텐트 치고 기다릴 만큼 좋은 집이 된다는 것.

안 팔린 게 집 문제가 아니라 값 문제였다는 걸, 이번에 대놓고 보여준 셈이다.

여러분이라면 어떠세요? 시세보다 1억 싸면 텐트 치고 기다릴 만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