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넣었을 뿐인데 차 180대가 정비소로 간 사건

휘발유 넣었을 뿐인데 차 180대가 정비소로 간 사건

주유소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노즐 꽂고, 금액 누르고, 기다리는 게 전부잖아요.

그 사이에 탱크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아무도 확인 안 합니다. 확인할 방법도 없고요.

부산에서 그 전제가 무너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휘발유 경유 가격이 표시된 국내 셀프 주유소

지난달 25일 오전 11시쯤, 부산 사하구의 한 셀프 주유소에서 직원이 기름을 옮기다가 휘발유 탱크에 경유를 부어버렸습니다.

실수 자체는 한순간이었는데, 문제는 그 뒤였어요.

아무도 몰랐습니다.

셀프 주유소니까 직원이 일일이 차에 기름을 넣어주는 것도 아니고, 손님들은 평소처럼 와서 휘발유 버튼 누르고 갔죠. 그 탱크에서 나온 건 휘발유와 경유가 섞인 기름이었고요.

이 사실이 드러난 건 다음 날 오전 10시쯤이었습니다. 그 주유기에서 기름을 넣은 손님이 차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주유소랑 한국석유관리원에 신고하면서요.

계산해보면 거의 하루 가까이, 23시간 동안 그 기름이 계속 팔려나간 겁니다.

차량 주유구에 주유 노즐을 꽂는 모습

그렇게 피해를 본 차량이 약 180대로 집계됐습니다.

수리비가 진짜 문제인데요. 적게는 100여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나온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차이가 크냐면, 혼유 사고는 피해 범위가 “언제 알아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기름이 탱크에만 머물러 있으면 연료를 빼내고 라인 청소하는 선에서 끝납니다. 근데 시동을 걸어서 그 기름이 엔진까지 돌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져요. 연료 라인, 필터, 인젝터까지 줄줄이 손대야 하고, 심하면 엔진을 통째로 교체해야 하는 경우도 나옵니다.

문제는 이번 사건 피해자들 대부분이 주유하고 그냥 출발했다는 것이죠. 알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정비소에서 분해된 자동차 엔진룸 내부

혼유가 됐을 때 나타나는 증상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가속이 잘 안 되고 출력이 확 떨어지거나, 엔진에서 평소와 다른 소음이 나거나, 주행 중에 시동이 꺼지기도 합니다. 배기가스가 유난히 짙게 나오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정비 쪽에서 늘 하는 얘기가 하나 있어요.

혼유가 의심되면 절대 시동을 걸지 말고, 그 자리에서 견인하라.

시동을 안 건 상태면 잘못된 기름이 연료탱크 안에만 있어서 엔진은 멀쩡합니다. 근데 시동을 거는 순간 그게 엔진 쪽으로 빨려 들어가요. 수리비가 몇 배로 뛰는 분기점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이미 달리고 있다가 이상함을 느꼈다면, 갓길에 세우고 시동 끄고 보험사 긴급출동이나 견인을 부르는 게 맞습니다. “일단 정비소까지만 가자” 하고 몰고 가는 게 제일 손해예요.

리프트에 올린 차량을 정비하는 자동차 정비소

참고로 혼유 사고 자체는 생각보다 흔합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혼유 관련 상담만 봐도 2018년 125건, 2019년 99건, 2020년 60건, 2021년 50건으로 집계돼 있어요.

수치만 보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엔 함정이 있습니다. 이 통계는 직원이 주유하다 사고를 낸 경우만 잡힌 숫자거든요. 셀프 주유소에서 차주가 직접 잘못 넣은 건 애초에 집계가 안 됩니다.

그런데 전국 셀프 주유소는 2009년 1,700여 개에서 2020년 4,460개로 10년 사이에 2.6배가 됐어요. 통계에 안 잡히는 영역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죠.

덧붙이면, 반대 방향이 더 위험합니다. 경유차에 휘발유를 넣는 쪽이요. 경유는 그 자체로 윤활 역할을 하는데 휘발유가 들어가면 연료 펌프랑 인젝터가 마모되면서 고압 부품이 줄줄이 나갑니다. 수리비 견적이 훨씬 사납게 나오는 이유예요.

보상은 어떻게 되느냐. 이번처럼 주유소 측 과실이 명확한 경우에는 주유소가 책임을 지는 게 원칙입니다.

다만 실무에서는 영수증, 결제 내역, 블랙박스 같은 “내가 그 시간에 거기서 주유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절차가 수월하게 굴러갑니다. 셀프 주유소는 특히 그래요.

주유소 쪽 행정처분도 남아 있습니다. 사하구는 한국석유관리원 조사 결과를 보고 처분을 내릴 예정인데, 가짜 석유로 판정되면 사업정지 3개월, 품질 부적합으로 판정되면 고의나 중과실 여부에 따라 사업정지 3개월 또는 경고가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솔직히 이 사건에서 제일 서늘한 부분은 피해 규모가 아니라, 피해자 입장에서 막을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운전을 아무리 조심히 해도, 정비를 아무리 꼬박꼬박 받아도, 주유소 탱크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주유 영수증 한 장 남겨두는 정도겠네요. 평소엔 그냥 버리는 그 종이가, 이런 상황에서는 유일한 증거가 되니까요.

여러분은 주유하고 영수증 챙기시는 편인가요?